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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리나 예배당》 완공 :  1447년


니콜리나 예배당은 바티칸 궁전에 위치한 예배당으로, 프라 안젤리코와 그의 조수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니콜리나 예배당은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으며, 그의 개인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예배당은 사도 궁전에서 오래된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벽면에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와 성 라우렌시오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배당의 천장은 파란색 바탕에 별들이 그려져 있으며, 구석마다 네 명의 복음사와 여덟 명의 교회박사 인물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 강하가 원래는 예배당에서 볼 수 있었으나, 나중에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월창에 있는 그의 다른 작품들은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프레스코화 중 성 스테파노의 일생을 다룬 작품은 황금 전설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반면 성 라우렌시오의 일생을 다룬 작품은 그의 유해가 안치된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성당을 따라 그렸습니다. 성 스테파노는 유대인 예루살렘에서 성 베드로에게 부제로 서품을 받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월창에는 성 스테파노가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주는 장면과 부제 서품을 받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당시 예루살렘 성안에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결국 성문 밖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성 라우렌시오 역시 부제 서품을 받은 교회의 보물을 황제에게 넘겨주는 대신 로마의 빈민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성 라우렌시오와 성 스테파노의 삶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두 순교자는 부제로 서품을 받았고, 빈민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했으며, 신앙을 지키다가 결국 순교하였습니다. 이 프레스코화는 니콜라오 5세가 로마를 재건하려는 웅대한 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레스코화에 등장하는 큰 벽들은 로마의 벽을 재건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니콜리나 예배당은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건축물을 통해 니콜라오 5세의 로마 재건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예루살렘 교회와 로마 교회의 연계성을 강조하며, 니콜라오 5세 당시 동방과 서방 기독교의 대분열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는 교황 식스토 2세의 모델로 니콜라오 5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세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가 1475년에 창작한 두드러진 작품 중 하나로, 현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을 현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하여 기독교 예술의 명작으로 꼽힙니다.

베로키오는 이 작품에서 세례의 순간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아하게 세례를 받고 있으며, 세례 주최자인 요한은 경외와 존경의 표정으로 예수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베로키오는 이 작품에서 예수의 몸집과 근육, 그리고 온화한 표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살아있는 듯한 현실감을 전합니다.

작품의 배경은 코모 호수의 몬테 산 마르티노로, 아마도 리에르나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어 이 작품을 더욱 독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예술가들이 흔히 사용한 예루살렘이나 요단강의 풍경과는 다른 설정으로, 베로키오가 독창적인 예술적 선택을 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한 가지는 작품의 왼편에 등장하는 천사입니다. 이 부분은 베로키오의 제자이자 동시에 동료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림의 이 부분은 전체 작품에 있어 다빈치의 독특한 기여를 보여주며, 예술 역사에서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써 예술적 업적과 함께 예수의 세례 순간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5세기 후반의 피렌체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는 조각가와 금세공으로서 크고 번창한 공방을 운영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보티첼리, 보티치니, 로렌초 디 크레디,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동료들과 친분을 형성했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등 예술적 교류와 협력이 있었습니다.

베로키오는 주로 조각가로서 활동했지만, 회화 작품에서도 훌륭한 예술가임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그림 작품은 다소 드물었지만, 피렌체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나무판에 템페라 기술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화가들의 기술적 영향을 받아 회화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였습니다.

1515년에 산 살비 교회의 의뢰로 창작된 베로키오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 후 산타베르디아나의 발룸브로산 자매에게 양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810년에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며, 1959년에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매입되었습니다.

16세기에는 조르조 바사리의 《화가들의 삶》에서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세례》가 언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베로키오의 예술적 공헌과 그의 작품이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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